해방이 된 이후 조선일보를 속간하면서 쓴 속간사를 보면 '우리는 입을 가졌으나 생벙어리 행세를 하여야 하였으며 할 말은 많았으나 호소할 곳이 없었다. 우리는 죽으라면 말없이 죽는 시늉을 하지 않으면 안될 환경에 놓여 있었다.'고 써 있다. 물론 변명과는 달리 방응모의 친일은 자기방어의 한계를 넘는 행위였다. 부패와 타락이 그 본질인 사회에서 깨끗한 사람은 좀 거만하게 굴어도 된다는 김남주 시인의 시도 있지만 어쨌든 방응모가 겪었던 시대적 상황에 내가 처해보지 않았으니 그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서 왈가왈부할 입장은 최재형 선생의 최후를 전했다. 일제가 일부러 최재형 선생의 유해를 찾을 수 없게 봉토도 없이 평평하게 묻어버린 것이었다. 우수리스크 감옥 뒤 황량한 길바닥, 최재형 선생의 순국 장소로 추정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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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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